박찬욱 신작 '어쩔 수 없다', 블랙 코미디의 정수로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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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신작 '어쩔 수 없다', 블랙 코미디의 정수로 웃프다

Yerin Han · 2025년 9월 18일 03:05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 수 없다'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5년간 제지 회사에 몸담았던 만수(이병헌 분)가 갑작스럽게 해고된 후,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블랙 코미디의 진수로 그려냈습니다. 미국 소설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하며, 웃음과 슬픔, 씁쓸함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영화는 평생을 제지 회사에 헌신한 만수에게 닥친 해고 통보로 시작됩니다. 대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만수는 3개월 안에 재취업에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리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결국 만수는 유령 회사를 설립하고 강력한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합니다. 구범모(이성민 분), 고시조(차승원 분), 최선출(박희순 분) 등이 최종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만수가 이들을 '제거'하고 성공적으로 재취업할 수 있을지가 영화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는 실직자가 된 만수의 상황을 통해 빛을 발합니다. 그의 처절한 노력은 씁쓸하면서도 웃음을 유발합니다. 특히, 만수가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진호(유연석 분)의 댄스 파티를 멀리서 바라보며 느끼는 쓸쓸함과, 이를 따라 하려다 선보이는 어설픈 춤사위는 안쓰러움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냅니다.

또한, 만수가 구범모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장면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배경음악으로 설정하고, 마치 코미디처럼 대화를 시도하다 실패하는 모습으로 긴장감 속에서도 웃음을 선사합니다. 여기에 구범모의 아내 아라(염혜란 분)까지 가세해 벌이는 '사오정' 같은 대화는 생사가 오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코미디 호흡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어쩔 수 없다'는 음악, 미장센 등 박찬욱 감독 특유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와 메시지가 쏟아져 만수의 이야기가 힘을 잃는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만수에게 제지업이 인생 그 자체였기에 그의 선택이 '어쩔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영화의 목표지만, 그의 선택 과정이 설득력과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의문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배우 이병헌의 연기는 단연 압권입니다. 만수의 광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오가, 관객을 웃기고 울립니다. 이성민은 구범모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염혜란과의 부부 케미는 추잡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이러니를 선사합니다. 손예진이 연기한 미리 역시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병헌은 '어쩔 수 없다'에서 인생의 절벽 끝에 몰린 중년 남성 만수 역을 맡아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그의 연기는 캐릭터의 절망감과 유머를 넘나들며 관객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번 작품은 그가 블랙 코미디 장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